치마폭에서 놀지 않을래요.
치마폭은 엄마 그림자 안에만 갇혀 있죠.
세탁기 통에서 청바지 지퍼에 끼어 투덜거리거나,
고린내 나는 양말과 속옷 사이에서
이런 운명이 지긋지긋하다며 자맥질할 뿐이죠.
아버지 러닝셔츠나 작업복은
빨랫줄에서부터 기가 죽어 있죠.
그렇게 살다가는 엄마 아빠 꼴 난다는 말,
귀 뚫린 뒤 진저리 치게 들었죠.
내가 왜 불화살 맞은 멧돼지처럼 나도는지 모르죠?
나는 아빠 땀 냄새가 자랑스러웠어요.
엄마가 싸준 김밥과 손뜨개질 한 목도리가 좋았어요.
정말 병아리처럼 엄마 치마폭에서만 살고 싶었죠.
아빠 팔에 매달려 세상 흙탕물을 건너고 싶었어요.
나를 내친 건 엄마 아빠의 불안이에요.
이미 꿈을 팽개친 어른이란 걸 들킨 뒤였죠.
못나서 미안하다고 성질부터 부렸잖아요.
나는 날라리가 아니에요, 날라리 벌이에요.
아무 생각 없이 떠돌아다니는 거 아니라고요.
친구들보다 멀리 날아가서 색다른 꽃을 만나고 오죠.
모두 내 뒷모습을 보며 손가락질하지만
내가 노니는 드넓은 나라의 꽃과 꿀은 알지 못하죠.
내가 입고 다니는 이상한 옷은 색다른 꽃가루죠.
으스대는 게 아니라 어깨춤을 추는 거예요.
기다려 보세요. 가까운 꽃이 다 져버리면
산 넘고 바다 건너 새 세상으로 안내할게요.
그때는 당당하게 푸른 작업복을 입고
둘러앉아 김밥을 싸요. 나는 날라리가 아니에요.
꿀통에 호기심과 용기가 넘치는 날라리 벌이에요.
꿀만 아니라 돌아오는 길까지 나눌 거예요.
- 이정록, 「날라리 벌」
* 가좌고등학교 이선영 선생님께서 신청한 사연을 읽고 쓴 시입니다.
개학을 하고 이틀이 지나도록 한 놈이 등교하지 않았다. 작년 담임 선생님께 받아 놓은 어머니의 연락처로 전화를 해 보았다. 내일은 꼭 보내겠다는 어머니의 한숨 섞인 다짐과 함께 결석 64일의 생활기록부를 보며 올해는 정말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작년 담임 선생님께서도 그 아이의 집까지 찾아가서 새로 만난 담임 선생님과 잘 지내야한다고 단단히 일러두신 듯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들이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학교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고 훈수를 둔다. 그러나 정말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 모습이 모두 다르듯이 말이다. 이럴 때 나는 대개 그냥 마음을 접는데, 이 아이는 그냥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이 새끼가 어디까지 가나 한번 건드려보고 싶었다.
외할머니 댁에서 먹고 자고 하는 이놈을 찾아갔다. 대개 사춘기 아이들은 너무 많은 관심은 피하려고 하고 또 내버려두면 어른들이 관심이 없다며 시비를 건다.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서 항상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게 아이들이다. 그런데 같은 교무실의 선배 선생님께서, 나는 예전에 애들이 안 오면 집에 찾아가서 직접 데리고 왔었어. 집에 한두 번 가기 시작하면 부모도, 아이도 달라지더라고. 정말일까? 외할머니의 아침 운동과 더불어 나도 매일 그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등교하기 시작했다. 현관 비밀번호까지 틀 정도가 되었고. 매일 불같이 쳐들어가서 너 같은 새끼는 이불을 덮고 잘 자격도 없다며 이불을 빼버리기도 했다. 어떤 날은 순순히 따라오기도 했고, 어떤 날은 도망을 쳐버리기도 했다. 고통의 나날은 쌓여만 갔다.
수능은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수능이 끝날 때까지 담배 한 번을 안 피우고 시험을 보았다. 이게 그동안 고생한 담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나. 물론 결과는 엉망이었다.
...결국 대학을 보냈다. 세상에나 운도 좋은 새끼. 지방대학이긴 하지만 그동안 알바로 갈고 닦은 사장님을 홀리는 솜씨로 면접을 보고 대학에 척하니 합격을 하였고,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던 그 비인기학과는 경찰행정학과로 편입되었다. 운 좋은 새끼. 경찰서에 그렇게 들락거리더니 경찰행정학과래.
1월 1일.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 대학 안 다닐래요. 너는 정초부터 선생님한테 전화를 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라고 말해도 시원찮을 판에 보내놓은 대학을 안 다닌다고? 미쳤구나!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거야?
전화기 너머로 우는 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저 20분에 한 번씩 그냥 화가 나요. 병이구나. 내 새끼가 병이었구나. 그냥 반항기에 하는 소리가 아니었구나, 싶었다. 그래, 아들아. 선생님이 미안해. 화가 나는데 참고 전화를 해줘서 고맙구나. 얘기할 데가 없어요. 엄마가 걱정하실까봐 말을 못 하겠어요. 그래. 나한테는 괜찮아.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니까 난 걱정 안 해. 잠이 안 오고 불안해서 술을 먹고 동이 트면 잠이 들고, 내가 아침부터 들이닥쳐서 등짝을 때려가며 깨워서 죄인처럼 등교했던 시간들이. 서로에게 스쳐갔다. 교사는 부모여야 하고, 때로는 친구여야 하고, 또 철저하게 제3자로서 기능해야 한다.
3년이 지났다. 졸업을 하고도 몇 차례 연락이 와서 고민을 털어놓고 나도 걱정이 되곤 했지만. 이제는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세상에 잘 적응을 하는 것 같다. 다행이고 기쁘다. 17년 전의 나는 아이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들의 인생에 귀감이 되는, 평생 아이들의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조금 달라졌다. 졸업한 아이들한테 연락이 자꾸 오면 불안하다. 나는 스쳐가는 교사이고 싶다. 아이들에게 평생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 부담스럽다. 아이들이 스스로의 인생을 꾸려가는데 자꾸 과거를 돌아보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나의 미운오리새끼들이 하나 둘 나의 품을 떠나는 즐거움과 보람으로 쿨 하게 살고 싶다. 나는 아이들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지는 교사가 아니다. 나는 그냥 내 삶이 행복한 인간인 것이다.
李楨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의자』 『정말』 『어머니학교』 『아버지학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동심언어사전』 등과 동시집 『콧구멍만 바쁘다』 『저 많이 컸죠』 『지구의 맛』, 청소년시집 『까짓것』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 산문집 『시인의 서랍』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박재삼문학상, 한성기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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