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 작은 나무를 만났습니다
어쩌자고 풀도 아니면서 보도블록 틈에
그것도 사람들이 무시로 드나드는 길에
어린나무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나무는 좁은 곳도 아랑곳없이 뿌리 내리는 소임을 다합니다
나는 돌멩이를 주워 와
지나는 발길에 차이지 않게 울타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이렇게 좁은 곳을 택했지만
뿌리가 튼튼해지면 옮겨져 무성하게 자랄 느티나무입니다’
이름표도 달아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돌멩이 울타리를 보고 이름표를 보고
작은 나무가 다칠세라
살얼음을 딛듯 사뿐사뿐 조심조심 건넙니다
잘 자라라는 덕담까지 잊지 않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나무 하나가 자라려면 얼마나 많은 순간이,
손길들이 지켜주고 응원해 줘야 하는지를
우리 또한 수많은 순간, 지켜준 손길들로 인해
그곳에 있었고 또 이곳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작은 나무를 돌보는 사람입니다
보도블록 틈새 나무든 정원에 심어진 나무든
우람한 나무로 서게 될 날을 그리며 지켜보는 사람입니다
느리지만 끝까지 다독이며 같은 길을 갈 친구입니다
아이라는 꿈나무, 사랑이라는 나무, 우정이라는 나무, 삶이라는 나무
우리는 나무를 가꾸는 사람입니다
오늘 이 사랑나무에도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것을 압니다
그늘이 되고 품이 되고 손길이 되어 수많은 사람을 보듬을 것입니다
사랑나무 앞길을 노래로 축복합니다
인연이라는 뿌리에 스민 손길들을 축복합니다
두 손 모아 축복합니다
오늘을 축복합니다!
- 김미희, 「사랑나무」
* 첨단고등학교 조미형 선생님께서 신청한 사연을 읽고 쓴 시입니다.
저는 결혼 전 2006년~2010년까지 첨단고에 근무하다가 최근 2017년에 다시 첨단고에 근무합니다. (광주는 교사가 순환해서 근무해야 함.)
2007년 1월에 결혼을 한 저는 당시 1학년 11반 담임이었습니다. 그때 저희 반 아이들 40명 모두가 교복을 입고 와서 깜찍한 결혼 축가를 해 주었지요.
그때 노래를 불렀던 우리 반 아이 중 한 명,
그 아이는 다시 고3 때 반장과 담임으로 인연을 맺었지요.
그 학생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고, 이제 12월에 결혼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 아이의 결혼식을 의미 있게 해 주기 위해 생각한 것이 있어요.
이제는 반대로
저와 저희 남편이 축가를 준비해 주기로 했습니다. (저희 남편은 시립합창단원 바리톤입니다.)
제자의 결혼식 날 풋풋했던 신부의 모습 영상과 저의 감동 멘트를 하기로 했어요.
그때 작가님이 지어주신 시를 낭송하고 싶어요.
긴 글보단 함축적이고 의미 있는 시 한 편이 더 감동일 듯합니다.
참고로 이번에 결혼하는 그 제자는 저처럼 학생과 함께 장난도 치고 이야기도 잘 들어주는 교사를 꿈꿔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창 시절 내내 노력도 열심히 하고 늘 제 옆에서 사소한 심부름도 해 주고, 성적 고민, 친구 고민 등 속마음 이야기까지 함께 나누었어요.
3학년이 되어 반장을 할 때는 정말 많은 도움을 주면서 반을 이끄는 데 힘이 되었고요.
지금은 학생들과 잘 소통하고 열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답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도 연락 잘하고 지내서 그 결혼식 때는 그 당시 고등학교 제자들도 많이 온다고 하네요.
서로 함께 늙어가는 스승과 제자 사이. (사실 학교에 신규 교사들 나이도 이 친구들보다 어린 데 함께 어울리며 늙어가죠.)
같은 길을 선택한 스승과 제자.
그리고 우정, 의리에 관한 내용이면 좋겠습니다.
저자 김미희는 제주 본섬에서 다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우도에서 태어났다. 본섬으로 나가 고등학교를, 부산에서 대학을 다녔다. 결혼해서 고래 도시 울산에서 10여 년을 살다가 지금은 서울과 천안을 오가며 지내고 있다. 200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달리기 시합〉이 당선되면서 글쟁이로 살고 있다. 푸른문학상 동시와 동화 부문에 각각 당선되었고, 《동시는 똑똑해》로 제6회 서덕출문학상을, 《하늘을 나는 고래》로 장생포고래창작동화 대상을 받았다. 울산동여자중학교 사서 교사를 지냈으며, 5년째 서울 봉원중학교 학부모독서회 ‘시나브로’를 이끌고 있다. 외계인에게 로션을 발라주기도 하고, 가끔은 개똥철학을 한답시고 멍 때리며 지낸다. 동시집 《달님도 인터넷해요?》, 《네 잎 클로버 찾기》, 동화 《얼큰 쌤의 비밀저금통》, 《엄마 고발 카페》, 청소년시집 《외계인에게 로션을 발라주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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