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번은
나무 위에서 수업해요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
마음에 드는 가지에 앉아
나뭇잎을 읽어요
또박또박 햇살이 쓴 이야기를요
눈감고 바람의 속삭임을 듣는 것도
재미있을 거예요
조잘조잘 먼 곳에서 담아온 이야기를요
이도 저도 싫으면
하품 길게 하고 낮잠을 자요
달달한 꿈으로 피로를 녹여요
하루 한 번은
시계를 보지 않아도 되는 수업을 해요
나무의 시간에 맞춰
천천히가 되어요
빨리 하느라 놓쳐버린 것들과
멀게만 느껴지는 나를 찾는
수업을 해요
- 이장근, 「나무와 늘보」
* 대구동부고등학교 민호기 선생님께서 신청한 사연을 읽고 쓴 시입니다.
‘여유로움’을 배우다 - 북카페를 가다
동부기자단 동아리 반장 김세윤
4월 초. 봄비가 내린다.
서먹서먹하던 3월을 보내고 처음으로 동아리 반일제를 나가는 날이다. 첫 동아리 반일제 활동이 의미 있고 기대가 됐던 이유는, 교지부에 처음 들어와 3월 내내 했던 계획 세우기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동부 기자단’이라는 동아리 명에 걸맞게 직접 현장에 나가 직접 사진도 찍고 내용도 조사하기로 한 것. 정확하게는 대구 근대화 골목을 다니며 조별로 맡은 주제를 취재하는 것이고.
하지만 지난주까지 무덥기까지 하던 기온(26도)이 아침부터 급강하했다.(5도) 빗줄기는 굵어지고 시작했고 바람마저 심하게 부는 상황. 이런 배려 없는 봄비 탓에 주로 야외를 다녀야하는 근대 골목 취재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비가 와서 운치 있는 근대 골목을 찍어도 예쁠 것 같기도 했지만, 날씨를 탓하는 친구들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벌써 들려오고 있었다.
문제를 들고 동아리 담당 선생님께 찾아갔다. 회의 결과, 근대 골목 취재는 시원한 가을로 미루고 2.28민주화운동기념회관(2.28도서관)에 갈 것인지, 아니면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구 혁신도시에 있는 북카페에 갈 것인지를 투표를 통해 정하기로 했다. 투표 결과 다행히 모든 친구들이 돈을 가지고 있거나 돈을 빌릴 수 있어서 근처 북카페로 결정. 하지만 슬프게도 검색해낸 북카페까지는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다. 걸어서 15~20분 거리. 어쩔 수 없이 짓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도보를 선택했다.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많이 부는 날씨에 심지어 우산이 없는 친구도 있어 함께 써야만 했다. 옷조차 얇게 입은 24명의 여학생들이 몇 개의 우산에 의지해 걷기 시작했다. 앞에서 선생님이 인솔해주시고 친구들이 줄을 서서 걸어가는 모습이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는 모습과 비슷해서 한편으로는 기분이 들뜨고 그랬다. 다들 그래서였나, 심한 바람에 친구의 우산이 뒤집어져도 험악한 날씨와는 반대로 모두들 깔깔 웃었다. 그렇게 비를 맞고 웃으면서 북카페(만화카페)에 도착을 했다.
사실 북카페가 처음이다. 기대 이상으로 시설이 깔끔하고 편리했다. 사다리 계단을 통해 올라간 복층 공간에서 단칸방 소파, 테이블 좌석까지 취향대로 골라서 눕고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고, 학습 만화 · 애니 · 순정 만화 · 웹툰 등 종류별로 다양한 독서 취향에 맞게 준비되어 있었다.
오로지 공부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바쁘고 버거운 일상을 보내야만 하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이 소중한 3시간. 그 여유로움과 한껏 어울리는 곳이었다. 가자마자 신발을 벗고 책장을 스캔하며 복층 다락방에 가방과 짐을 풀고 3시간 권을 결제를 했다. 그리고는 웹툰이 있는 책장으로 가서 그동안 보고 싶었던 웹툰을 여러 권 뽑아서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옆에 책을 쌓아 놓고 가장 편한 자세로 책을 보는데 1시간이 그렇게 느긋하게 간 적은 오랜만이었던 거 같다. 선생님께서도 “아 얼마만의 여유인지 모르겠다.”라고 하셨는데 정말 여기로 들어 온 순간 시계 바늘에 돌이라도 달아 놓은 듯 2배로 느리게 흘렀다.
한 30분 정도 책을 읽었는지 목이 점점 마르기 시작하여 3시간 권에 포함되어 있던 아이스티와 과자를 하나 더 주문을 해서 다시 자리에 누웠다. 주문한 아이스티가 나왔는데 빨대 모양도 핑크색 하트인 게 예뻐서 친구랑 사진도 찍고 그렇게 놀았다. 한참 읽고 먹고 떠드느라 지쳤는지 잠이 솔솔 와서 잠깐 눈을 붙였다. 그렇게 놀고 자고 먹고 읽고 떠들었는데도 3시간이 그렇게나 천천히 가다니. 시험이 끝난 날 북카페에 와서 하루 종일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천천히 가던 3시간이 지나고 동아리 시간을 꽉 채워서 마쳤는데도 기분이 좋았다. 비록 비가 와서 계획대로 움직이지 못한 하루였지만 바쁜 생활에서 잠깐의 여유를 찾게 해 준 2018 첫 동아리 반일제 활동은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활동으로 잊지 못할 것 같다.
1971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200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고, 2010년 푸른문학상 ‘새로운 시인상’을 받으며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집 『꿘투』, 청소년시집 『악어에게 물린 날』 『나는 지금 꽃이다』 『파울볼은 없다』, 동시집 『바다는 왜 바다일까?』 『칠판 볶음밥』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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