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차를 무서워할까 봐
차가 많이 다니는
고속 도로 옆에 집을 지었다.
네가 기차를 무서워할까 봐
가장 빠른 고속철 옆에 집을 지었다.
네가 굉음(轟音)을 무서워할까 봐
우르르 포탄이 구르는
고가 도로 밑에 집을 지었다.
네가 열 길 물속을 무서워할까 봐
폭포 옆에 집을 지었다.
모두 너를 위한 거다.
우리는 알에서 깨어날 때
작고 동그랗게 웅크려 있던
무서움마저도 다 부숴 먹었다.
까짓것 우리는 까치다.
어차피 우리는 헤어진다.
엄마 아빠는 죽음보다는 견딜 만한
이혼을 선택했다. 가족끼리는
말하지 않거나 말할 수 없는
모든 아픔도 사랑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엄마 아빠 중 하나를 택하라.
언제나 틀린 답은 없다.
조금 덜 불행한 쪽만 있다.
- 이정록, 「까치」
* 소명여고 조권희 선생님의 사연을 읽고 쓴 시입니다.
(너무 역동적인 사연이 많지만, 현재 저의 학급은 소소한 사연이 많네요. 아이들로부터 기억에 남는 내용을 받아서 '시'에 응모한 만큼, 잘 부탁드립니다. ^^)
처음에 고2에 올라올 때는 고2가 특별히 힘들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불화와 부모님 중 한 명을 택해야 한다는 선택이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할 줄은 몰랐다.
고2가 되어서인지, 집에서의 생활이 괴로워서인지 뜻하지 않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작년 반을 뒤로하고 새로운 환경에 처해서인가, 어색한 분위기를 맞게 되어서인가 이런 생각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반 친구들과의 친밀도는 높아지는 반면, 이상하게 학교생활을 하기 힘이 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아빠로부터의 연락을 받았다. 아빠 회사가 부도가 났을 때 내가 태어나서 다시 살아갈 희망이 생겼었다는 말, 그 말 한마디가 이상하게 기억을 맴돌았다.
모든 것에 무기력해지고 살 이유조차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고, 아빠의 지지가 내게는 큰 힘이 되었다. 이혼은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그 안에서 고통을 받는 것은 온전히 나이기에 어서 이 고통을 벗어나고 싶다. 어느덧 아빠를 의지하며, 아빠를 하루하루 보고 싶은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창밖에는 비가 조금씩 내리는데 어느덧 야자 시작 조금 전이라 약간 바깥이 어두웠다. 커튼을 반만 쳤더니 비가 내리는 게 다 보였다. 교실은 에어컨을 약하게 틀어서 조금 추웠고 교실 뒷바닥에 누워서 친구들과 노래를 들으며 농땡이 부리던 평화로운 시간, 이 시간이 온전히 지나가기를, 그리고 집에서도 지금처럼 평화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나날이 빨리 오기를…….
李楨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의자』 『정말』 『어머니학교』 『아버지학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동심언어사전』 등과 동시집 『콧구멍만 바쁘다』 『저 많이 컸죠』 『지구의 맛』, 청소년시집 『까짓것』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 산문집 『시인의 서랍』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박재삼문학상, 한성기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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