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ㄲ’을 보고 있으면
마음 꼬부라진 내 등을
누군가 다가와 두드리는 것 같다.
그가 어깨를 토닥일 때마다
꿈, 깡, 꼴, 꾀, 끈, 끼, 꾼이란
삶의 열쇠가 눈을 뜬다.
‘ㄸ’을 쳐다보고 있으면
활짝 핀 꽃 두 송이가
꿀벌을 부르는 것 같다.
손잡고 높이 오른 두 사람이
멀리 내다보며 기뻐 소리치는 것 같다.
목젖에 햇살이 들이치는 것 같다.
‘ㅃ’을 굽어보고 있으면
꿈 보따리 위에 놓인
밥 두 그릇이 보인다.
네댓 숟갈 서로에게 나눠 주는
활짝 웃는 잇몸이 보인다.
똑같이 줄어드는 빈 그릇이 빛난다.
‘ㅉ’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지난봄 꽃대궁과 한여름의 이파리와
늦가을 알찬 열매를 다 바치고
뿌리만 꼭 껴안고 겨울을 나는
희망의 갈무리가 보인다.
믿음의 뿌리가 당차다.
우리는 ‘ㅆ’이 되어
손을 맞잡고 봄으로 간다.
도토리 키 재기처럼 어깨를 친다.
어미 부리를 기다리는 알껍데기가 아니다.
서로 어깨를 칠 때마다 싹이 튼다.
땅속 깊은 데부터 발자국 소리를 채운다.
- 이정록, 「쌍자음 속에는」
* 자운고등학교 박용숙 선생님께서 신청한 사연을 읽고 쓴 시입니다.
목요일 7교시 수업 시간은 1학년 9반이다. 오늘도 9반의 대부분은 일어서 있을 거다. 2교시와 3교시에 든 날은 제법 멀쩡한데, 7교시만 되면 더 시끄럽다. 더구나 7교시는 교과서 진도를 나가는 수업 시간이다. 시작종에 교무실을 출발해 교실로 향한다. 3층 복도의 끝에 있는 9반 교실에 가는 동안 두 개 반을 거친다. 나와 같은 방향으로 가서 교실로 향해야 할 학생 중 거슬러오는 녀석이 있다. 대개는 재효다. “물 빨리 먹고 가도 돼요?”, “그래, 얼른 와.” 이미 물 마시러 온 녀석에게 “안 돼!” 해 봐야 관계만 나빠진다.
재효는 9반 학생 중에서 가장 분노가 많아 보인다. 노래를 좋아해서 흥얼거리는 태호, 수업 첫날 “수업 안 할 건데요.”하던 경환이, 스프레이 뿌리던 대준이도 있지만, 그 넷 중 행동이 가장 거칠다.
목요일 3교시 9반 수업은 과정 평가로서의 수행 평가 시간이다. 말하기, 글쓰기, 매체 활용 등을 한다. 오늘 3교시는 수업 시간 토론을 시작하기에 앞서 토론자의 자세를 담은 영화를 보았다. 학생들은 영화를 보며 12명의 토론자에 대해 활동지를 적어야 했다. 재효는 어느새 슬그머니 엎드려 잔다. 재효를 두 번을 깨웠고, 세 번째 엎드려 잤을 때 교실 뒤로 나오도록 했다. 일어서면서 의자를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뺀다. 갖고 나와야 하는 책상 위의 물건도 거친 행동으로 집는다. 서 있는 책상에 나와서는 영화가 재미없다고 투덜댄다. 아놔…….
걸을 때 보면 터덜터덜 걷고, 의자에 앉은 몸은 거의 늘 뒤로 45도 이상 젖혀져 있다. 그래도 어느 틈에 활동지는 대충이라도 해 놓아서 가까이 가 보면 다하고 노는 거라고 한다. 거친 표현과 행동 때문에 교무실에 와서 약속 종이도 쓰고 갔다. 특별실 청소도 두 번이나 했다. 원래 한 번이었는데,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아 한 번이 늘었다. 처음에는 얄미웠는데, 그 녀석에게 집중하다 보니 나름 재미있는 점도 발견했다. 활동지는 빠뜨리지 않고 다 채워 놓는다는 점. 내가 벌점을 줄까, 인성지도부에 데려갈까,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얌전해진다는 점이다.
‘그래 그만하면 됐지…… 뭘 더 바라…… 학교에 잘 나오잖아…… 활동지는 다 하잖아…… 그래도 금방 반성하잖아……’ 나는 또 7교시 수업에 재효가 어떨까, 하고 수업에 들어갈 거다.
李楨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의자』 『정말』 『어머니학교』 『아버지학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동심언어사전』 등과 동시집 『콧구멍만 바쁘다』 『저 많이 컸죠』 『지구의 맛』, 청소년시집 『까짓것』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 산문집 『시인의 서랍』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박재삼문학상, 한성기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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